Thoughts & Records

멘토링 이야기 #1 - '이게 맞나?' 헷갈리는 당신에게

리차드 2025. 1. 23. 15:09
2025년에는 무료 멘토링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해볼겁니다.
그 중 한가지가 멘토링 케이스를 기록하여 공유하는 겁니다. 
정보 전달성 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느낌으로 부담 없이 적어보려 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참고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2025년 두번째 멘토링으로 진행했던 내용에 더해서,
기존 유사한 문의를 주셨던 분들의 내용을 함께 아울러 다뤄보려 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부지불식 간 수많은 의사결정을 내리며 살아가지만,
그 중에서도 커리어에 관련된 의사결정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떠한 길을 선택하기까지도 그러하지만,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렇습니다.

 

 

뭐가 됐든 괜찮으니 제발 뭐라도 정해서 열심히 좀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로부터 정말 오랫동안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30대 초반까지 특별한 목표 없이 지냈거든요 ㅋ
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공부를 잘하진 못했습니다. 흥미도 없었습니다.
나의 열정을 바쳐볼만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랑은 아닙니다만.. ㅋㅋ 그렇다구요.

제가 가진 스펙으로 갈 수 있는 곳도 마땅히 없었고, 그 많지 않은 선택지들이 만족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용돈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효율성 개선을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실제 지표로 성과도 만들어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의 실력이나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더라고요.

그리고 30대 초반이 되어서는 문득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구나.

 

 

 

나의 노력과 성과가 내재화되고, 장기적으로 나의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

이것 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현재의 내가 진입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의 커리어가 될 수 있는지.

몇 가지 선택지들이 있었지만 가장 현실적인 게 개발이었습니다.
개발을 선택할 당시까지 수집된 정보들을 기반하여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국비로 시작하면, 취업이 가능할 순 있으나 쉽진 않을 것이고,
커리어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것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이 험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가며 나의 실력이 생기고 장기적으로 그걸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 선택 이후로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게 맞나?..

부트캠프를 진행중인 어느 분께서 저에게 멘토링 신청을 주시면서 이게 맞나 하는 고민이 자꾸 든다고 하셨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며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의 해상도를 높여가는 시도를 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 하더라도, 중간에 의문이 들고, 회의감이 드는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 의문과 회의가 자신에게 더 맞는 다른 길로 이끌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내가 이 길을 왜 선택했는지, 왜 지속해야하는지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죠.

 

만약 지금, 비슷한 의문이 드신다면

 

저는 첫번째로, 재미있는지 확인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 보다 뒤쳐지는 것 같은 초조함, 내가 원하는 만큼 잘 해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 하락, 이런 건 잠시 내려두고요.
만약 개발이 그다지 흥미가 없거나, 앞으로 평생 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거나, 개발을 하며 즐거움을 느껴본 적 없다면
이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점검하고, 많은 분들과 이야기나눠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반대로 개발을 잘하고 싶다, 이걸 내 업으로 삼고 싶다, 개발이 잘될 때 즐겁다, 무언가 개발한 뒤 성취감을 느낀 적 있다
이런 감정이 있으시다면, 그 다음 단계를 체크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두번째로, 무엇이 나에게 의문을 유발하는지 더 면밀히 고찰해보시면 좋겠어요.
멘토링 요청 주셨던 분의 경우,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조금 벅찬 상태였어요.
부트캠프를 진행하고 계셨고, 매일매일의 삶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개발 공부와 프로젝트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다음과 같은 과정에서 의문이 들게 되셨습니다.
1) 팀 프로젝트니까,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구현 속도를 내고 싶다.
2) 구현 속도를 높이다보니, 돌아는 가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있다.
3) 그 내용들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고, 팀에 민폐가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의문의 해상도를 높인 뒤,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드렸습니다.

 

 

 

현재의 최선을 위한 비용

세상 만사 비슷하겠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은 특히 더 그러한 것 같아요.
작게는 변수명을 어찌할지 정하는 것부터, 크게는 어떤 아키텍처를 선택할지까지.
장단점이 서로 다른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트레이드 오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점이 전혀 없는 선택을 선택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최선을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해 선택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최선의 선택 또한 단점이 있고 비용이 존재합니다.

 

어떤 단점이나 비용도 수용하지 않으려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대신, 선택지 마다 지닌 장점과 비용을 정확히 분석해서 가중치를 두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지점이 사실 꽤나 귀찮은 지점입니다.
한 가지 선택지의 어떠함은 휴리스틱으로 선택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만,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장단점이 복합되어 있을 경우, 이 점들을 가중치 두어 복합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고를 들여서 수치화하고 적어서 눈으로 보고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내가 선택한 선택지가 가지는 단점을 수용해야 합니다.

 

문의주셨던 분의 경우, 내가 이해한 코드만 적다보면 개발 속도가 느려져서 팀에게 민폐가 될 것 같고,
속도만 내자니 나의 공부가 되지 않는 트레이드 오프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이 상황은 많은 분들이 상당한 우려를 표할 수 있고 위험하다고 판단할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분배해서 개인 공부 시간과 팀을 위한 시간을 구분해서 사용하라고 제안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한 방식은 지금 잘하고 계시니까, 그대로 밀어부치라는 거였습니다.
개발자의 제1덕목을 저는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기한 내에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민이 유발된 그 마음 자체가 저는 선한 동기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계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루에 16시간을 투자하고 계셨거든요.
구글밋으로 대화하며 느낀 그분은, 아무래도 개인시간을 구분해서 공부를 따로 하라고 해도,
그 시간을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 현재로서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노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더 가질 수 있게 응원해드려야하는 단계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부분을 잘해오고 계신지, 어떤 부분에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느껴지는지,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가 제안드리는 방안이 가지는 장점에 대해 전달드렸습니다.

 

초보 개발자의 GPT의 활용에 대해서는 아마 많은 분들이 우려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GPT가 있기 전 시절을 생각해도.. 제가 국비할 때는 없었거든요.
그때 코드를 수료 2년 정도 뒤에 되돌아봐도 아니 이런 코드가 있었어? 하는 코드가 많았습니다. ㅋㅋㅋ 긁어붙인거죠.
일단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든 완수해내는 경험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완벽하게 구현까지 해내기에는, 아직은 무리가 있는 단계.
그렇다면, 일단 분투 끝에 완수해내는 경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그게 무엇인지 이해가 따라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GPT의 활용 방법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는 있고, 이 지점에 대해서는 상세히 도와드렸습니다.
GPT의 제안에 대해 내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하거나 평가하기 어려울 경우,
너의 방금 제안에 대해 내가 어디까지 이해했고, 어디서부터 이해가 안되며,
관련된 어떤 지식이 결여되어 있기에 내가 이해가 안되는 건지 키워드를 제안해달라고 역제안하라고 했습니다.

 

 

 

이게 맞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인터뷰를 통해 `이게 맞나` 의 해상도를 높이고, 
현재까지 잘 해오고 계신 점, 앞으로 기대하게 되는 점에 대해 격려해드리며,
한 가지 선택지를 제안드리고 관련 필요한 조언을 함께 전달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안드린 게 언어입니다.
이제는 `이게 맞나?` 가 아니라 `이게 맞다!` 라고 말씀하시라는 겁니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합니다.
섬세하게 생각의 기저를 분석해서 한 쪽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엔 의지적으로 언어를 바로잡아서 사고의 길을 한 쪽으로 집중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게 맞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잘해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지금 겪는 어려움들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은 지금 해야할 일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
이게 맞다! 나는 잘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라 제안드렸습니다 ㅎㅎ
지금은 초기 단계니까, 학습 효율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점점 알고 있는 게 늘어날수록, 스노우볼처럼 학습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고,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점도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목소리가 달라지셨어요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고 나니, 멘티분 목소리가 달라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처음엔 의심, 불안, 자신없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는데,
에너지와 용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변해 있으시더라고요 ㅎㅎ
저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국비로 개발 입문하고 5년이 지났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발을 평생 내 업으로 삼는다는 결심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중간중간 좌절이나 힘든 시간들, 이게 맞나 하는 순간들 당연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포기하지 않기가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글을 쓰는 건 참 힘들게 느껴집니다.
두서 없이 마구 적어 내려갔는데..
확신이 흔들리고 용기가 필요한,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께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